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3세 (문단 편집) == 사망 == [[1485년]] [[헨리 튜더]]는 프랑스에서 잉글랜드로 2천 병력을 끌고 [[웨일스]]의 밀포드 헤이븐에 상륙했다. 튜더 가문은 웨일스 출신이었기 때문에 웨일스는 헨리 튜더를 전폭 지지하여 헨리의 군대에 합류했고, 리처드 3세도 잉글랜드 전역의 귀족들을 소집하여 진압에 나섰다. 3주 후 잉글랜드 중부 레스터 지방 보스워스에서 양군이 맞붙었다. 양측의 병력을 살펴보면 튜더 가문의 병력은 많아야 5천을 넘지 않았고, 리처드의 병력도 많아야 1만 2천, 보통 1만 선으로 보는데 에드워드 4세가 [[1461년]] 타우턴 전투에서 요크군과 랭커스트군 양측이 합친 병력이 5만이며 요크군이 2만으로 우세한 랭커스터군 3만을 격파하며 왕위를 얻었다는 점과 비교해 보자. 한마디로 리처드가 소집한 귀족들의 5명 중 4명이 소집에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리처드의 권력 기반이 심각하게 흔들렸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잉글랜드 북부의 귀족 가문인 스탠리가 변수였다. 리처드 3세도 스탠리 가문의 지지를 얻으려고 그에게 토지와 직위를 퍼주다시피 하사했지만 문제는 스탠리가 헨리 튜더의 모친 [[마거릿 보퍼트]]와 결혼하여[* 법률상만 결혼이고 실제 부부 생활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마거릿 보퍼트에겐 스탠리가 벌써 4번째 결혼이었다.] 헨리의 의붓아버지 격이 되었기 때문에 언제든지 리처드 3세의 뒷통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리처드 3세는 이를 간파하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전황은 리처드에게 유리했는데 리처드는 [[군대]]를 이끈 지휘경험이 있고, 무예도 할 줄 아는 [[전사]]였지만, 4살 연하의 헨리는 도망다니던 신세였기에 군대 지휘 경력이 전혀 없어서 후방에서 대기했고 그의 [[삼촌]]인 [[옥스퍼드]] 백작이 실제로 군대를 지휘했다. 게다가 전투가 시작될 당시만 해도 리처드 3세의 국왕군은 언덕 위를 점하고 있었던데다 머릿수도 헨리 반군의 2배였다. 리처드는 노련한 장군 노퍽 공작이 맡고 있던 그의 오른쪽 날개를 먼저 출격시켜 언덕 아래 있던 헨리의 반군을 치도록 했다. 하지만 상대편 지휘를 맡고 있던 역시 노련한 장군 옥스퍼드 백작의 책략에 빠져, 노퍽 공작 존 하워드는 전사했고 먼저 출격한 오른쪽 날개는 진창에서 백병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리처드는 왼쪽 날개를 맡고 있던 노섬벌랜드 백작 헨리 퍼시에게 노퍽 공작을 도우라고 명령했다.[* 이때 헨리 퍼시는 4천명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헨리 퍼시는 명령에 불복종함으로서 사실상 배신했고, 어떤 사료에서는 심지어 헨리 7세에게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까지 한다.[* 다만 현대에서는 대부분 학자들이 명령 불복종설을 지지한다.] [[파일:external/www.tudorplace.com.ar/Bosworth_bat.jpg|width=660]] 게다가 소집병력들까지 전세가 불리해지자 전투에 매우 소극적으로 나섰고 대놓고 이기는편 우리편이라며 관망분위기를 보이자 리처드는 위기에 처한다. 결국 리처드 3세는 측근들의 후퇴 요구를 거부하고 왕인 자신이 직접 전투에 앞장 섰다. 특히 후방에 있던 헨리 튜더는 전황을 지켜보기 위해 전선에 가까이 오기 시작했고 그의 깃발이 가까운 곳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리처드 3세는 기사들만 최소 1백 명을 불러모아 함께 언덕 아래로 --[[남자]]의 로망인-- 승부를 건 기병 돌격을 시도했다. 이 기병 돌격에서 리처드 3세는 랜스로 헨리 튜더의 기수 윌리엄 브랜든[* 훗날 1대 [[서포크]] 공작이 되는 [[찰스 브랜던]]의 아버지다. 윌리엄이 전사할 당시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아들 찰스는 1살 정도에 불과했다.]을 찔러 죽이고[* 위의 그림이 그 상황을 나타낸다. 오른쪽에서 왕관 쓰고 랜스차징하는 인물이 리처드 3세, 이 공격을 받은 기수가 윌리엄 브랜든이다. 들고 있는 깃발이 헨리 튜더의 깃발.] 헨리 튜더의 호위 기사들과 싸웠다. 이 돌격은 예상 못한터라 헨리 튜더는 당황하여 호위 기사들이 교전을 벌이는 틈을 타 피신했다. [[파일:fbf6d01767bbf955f7dbb2d66f9d155d.jpg|width=500]] 하지만 헨리 튜더의 친위 병력에 더해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스탠리 가문이[* 이 중 형인 토머스는 헨리 튜더의 양아버지] 개입했고, 결국 리처드는 몸소 앞에서 지휘하며 끝까지 싸우다가 전사했다. 그에게 적대적인 [[튜더 왕조]]의 사가들조차 '리처드 3세가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다.'는 데에는 견해를 같이한다.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국왕군 병사들은 왕이 전사하자 겁에 질려 도망쳤고, 헨리의 군대는 그들을 추격하여 닥치는 대로 죽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